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넬슨 만델라 (문단 편집) == 평가 == 사회 운동가 시기 만델라의 업적은 지금도 국내외적으로 호평을 받는다. 대통령 시기 업적에 대해선 대체로는 좋게 평가되지만 약간의 비판도 있다. 일단 정치적인 수완으로 봤을 때는 의회 구성 문제로 당시 지리해져가던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맺었으며, 당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반대한 극우 백인들과 [[반투스탄]] 내 기득권층의 반발, 잉타카 자유당과의 또다른 분쟁으로 남아공이 거의 내전 상태까지 갈 뻔 했던 것을 진화시켜 남아공을 안정시켰다. 허나 후에 그의 후배들이 일으킨 부정부패나 추문이 일어나는걸 적극적으로 제지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인종간 내전이 벌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 벌어졌던 만행에 대해서도 관대하게 처분했고 재산몰수같은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에 넬슨 만델라가 백인들한테도 많이 존경받는다. 이처럼 흑백 간의 갈등을 아우르고 남아공의 분열을 막은 성과를 낸 만델라였지만 그의 집권 시기에 남아공의 [[빈부격차]]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있다. 실제 그의 집권 시기 남아공 경제는 꽤 성장했지만[* 1980년대 각종 제재로 1%를 찍던 남아공 경제는 서방과 관계를 돈독히 한 만델라 집권 시기 4%대까지 상승한다.] 기업가와 정기적으로 회동하던 만델라가 당시 트렌드였던 신자유주의적 경제관을 받아들여 그 과실은 백인과 일부 부자 흑인들만 나눠가졌다는게 요지. 물론 애초에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있던 만델라도 분배 정책에 신경을 안쓴건 아니라 예를 들어 흑인 경제력 강화(BEE) 프로그램이라 해서 수탈당하던 흑인들에게 경제적 주도권을 줌으로써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제도를 시행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일부 흑인만 혜택을 입어 빈부격차는 더 심해졌다는 것. 그래서인지 지니계수가 많이 높아진 2010년대 중반 남아공 현지에선 만델라가 흑인의 배신자라는 식의 벽보가 붙는 일도 종종 있는 모양이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0006|#]] 물론 남아공에서 만델라는 여전히 위대한 어르신(Madiba) 취급받기에 다수를 대표하는 견해라고 볼 순 없지만, 남아공 내에도 반(反) 만델라 세력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애초에 여러 견해가 나오는게 민주주의 사회이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만델라 입장에선 좀 억울 할 법도 한게,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남아공만큼 사는 나라가 몇 없다. 다수는 저성장과 빈부격차, 독재 공격을 동시에 맞고 있는게 아프리카 현실이다. 당장 이웃나라 [[짐바브웨]]의 독립투사에서 경제 폭망의 원흉이 되어버린 [[로버트 무가베]]가 있다. 게다가 현재 남아공의 빈부격차는 [[타보 음베키|후임자]][[제이컵 주마|들이]] 훨씬 심화시킨 케이스라 이 부분에선 오히려 만델라가 재평가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